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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삶 시각문화연구소

삶을 예술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예술로 만드는 자서전 프로젝트

1) 이전 세대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을 열다

  •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안
  •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오늘날 예술 지원과 주제는 주로 젊은 창작자들과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장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빠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특정 세대만을 주목하는 것은 불균형적 시각을 반영한다.

본 기획은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경험을 조명한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을 만든다.

2) 스스로를 잃은 세대를 위한 일상의 큐레이션

  • 개인의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기

MZ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독립을 중시한다. 반면 부모 세대는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 중요한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3) 세대 간 대화와 상호 성장을 위한 기회

  • 젊은 예술가와 중장년층의 간극을 줄이고 상호 성장과 사회적 공감을 도모

세대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1) Opening Artistic Possibilities for Older Generations

  • Proposing new artistic approaches for the aging population and middle-aged generations
  • Providing opportunities to reflect on and reinterpret one’s life

Today’s art themes are primarily focused on young creators. While this fosters originality, it also reflects an imbalanced view amid a rapidly aging society.

This initiative highlights artistic experiences for older generations, creating space to reflect on and reinterpret one’s life through a curatorial process.

2) Everyday Curation for a Generation That Lost Itself

  • Providing space for self-reflection and artistic expression

Older generations devoted much to their families, often without time to process their own identity. Everyday curation helps rediscover hidden value in their narratives.

3) Opportunities for Intergenerational Dialogue

By bridging the gap between younger artists and older adults, the project fosters mutual growth, solidarity, and collaboration across generations.

이서석

첫 번째 장

첫인상과는 다르게 – 그녀는 큰 키와 밝고 세련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눈길이 간다 – 한식을 엄청 좋아해요. 주변에서도 저에게 파스타나 와인을 좋아할 것 같다고 얘기하지만, 제 취향은 김치찌개나 김밥에 더 가까워요. 제 큰 키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부터였어요. 그전까는 늘 위축되어 있었어요.

만약 학교 다닐 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아이였는지를 물어본다면 존재감이 없는 아이라고 말했을거예요. 그 이유에는 가정환경이라던지 여러 가지가 있었죠. 지금에서는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렸을 때는 그러할 힘이 별로 없잖아요. 늘 스스로 위축되어 있던 거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위축되어 있었고, 그랬기에 늘 소극적이었어요. 지금도 제 기질은 남아있어요.

이번 자서전 프로젝트에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을 만들어가는 방법’ 사업의 첫 단계로 시민참여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최했었고, 이곳의 참여를 통해 자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하는 것에 호기심이 확 생겨도 "제가 할게요"라는 말을 쉽게 못 꺼내고 있는거예요. 계속 망설이다가 프로그램이 끝날 때 즈음이 되어서야 말할 수 있었죠. 오늘날에서야 이 정도도 용기가 생긴거죠. 어렸을 때는 그 기회를 계속 놓쳐왔어요. 소극적이여서 마음속 말을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거죠. 심지어 성인이 되었어도 식당에서 맛있는 반찬을 몇 번이고 더 시켜 먹고 싶어도, "반찬 좀 더 주세요"라고 여쭙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랬던 제가 어떤 계기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개선이 되었어요. 제 성향 자체가 자율적으로 뭔가를 시도하기보다는 누가 시키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오히려 학교 다닐 때 조회나 종례처럼 정해진 틀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자유롭게 수강하고 집에 오는 그 자유로움이 오히려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또 하나의 모순적인게 있다면, 저는 보기보다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해요. 막내라서 그랬는지, 어릴 땐 정말 많이 울었어요. 고등학생까지는 매해 새로운 학년으로 진급하면 친구들이 바뀌는데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학년이 바뀌면 그렇게 맨날 울었어요. 신학기 초가 되면 짝꿍이 바뀐다고 울어댔죠. 짝꿍이 바뀌는 것도 싫고, 새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때는 오히려 빨리 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대학교는 4년 동안 친구가 안 바뀔 테니까 좀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환경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어요. 저는 1남 4녀 중 막내였는데, 늘 제 안에 그 환경이 일종의 '상처'처럼 남아 있었어요. 제 언니들이 “너는 그게(가정환경) 그렇게 상처였어?”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막내라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릴 때부터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집안의 경제적인 얘기를 자주 꺼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녜요. 그래서 언니가 저한테 이상하다고 했죠.

아무도 나에게 경제적인 것과 관련해 한 번이라도 압력을 주거나 돈을 아끼라고도 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가 “뭐 사줄까?” 하면 “괜찮다”고, “안 먹고 싶다”고 답했었어요. 언니들은 돈이 생기면 바로 쓰는 스타일이었는데, 저는 세뱃돈을 받았다 하면 2년이고 3년이고 안 쓰고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에는 언니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다 써버리게 되었지만요. 그때부터 길러지던 생각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저는 언니들이랑은 달랐어요. 성향은 비슷한데 생각은 좀 달랐던 거 같아요. 5남매이다 보니 큰언니하고는 꽤 나이 차이가 나지만 넷째 언니와는 조금밖에 차이가 안 나요. 큰언니부터 작은언니까지 사이가 너무 좋았어요. 원래 자식들은 부모님 사랑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서로 질투하잖아요. 물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바로 위 언니가 날 너무 미워했고, 무섭기도 했어서 사이가 좋지 않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제일 친해졌죠.

계기가 있다면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어머니께서 슈퍼우먼처럼 사시는 모습을 제가 늘 보아왔다는 거예요. 늘 바쁘셨지만 저희에게는 단 한 번도 부담을 준 적이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대단한 점이에요. 보통은 어머니가 바쁘고 하면 큰아이가 집에서 밥을 한다든가 아니면 동생들을 전담한다던가 등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자식들만큼은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게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저희에게 일체 맡기지 않으셨어요.

우리 어머니는 대장부 같은 사람이었어요. 저희 집이 광주 시내에 있었는데, 시내에 산다는 것은 도시에 사는 것이니 시골에서 오신 친척분들은 우리집을 자주 왔었죠. 마치 제가 서울에 올라가면 기거할 곳이 없어서 친척집에 가는 것과 같아요. 당연하게 광주 시내로 올라오시면 코스처럼 우리 집으로 와 계셨고 우리 어머니가 다 건사하였죠. 그러다보니 대가족과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어요. 우리 집에 누군가가 꼭 와 있거나 아니면 친척들이 와서 누군가와 일을 같이 하고 있거나 그랬죠. 사촌 오빠들은 다 우리 집을 다 거쳐갔을 거예요.

제 아버지가 공부를 좀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광주 시내로 왔다고 생각해요.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어머니는 아버지 쪽 친척분들과의 연락을 단절하지 않고 계속 이어왔어요.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는 그런 어머니가 가끔 불이익을 받는 것처럼 느낄때도 있었어요.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길에서 깡패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걸 보면 직접 가서 말리기도 하세요. 너무 무섭지 않나요?

우리 어머니는 그런 걸 해왔던 사람이에요. 근데 저도 닮아가는 건지 불의를 보면 못 참았겠어요. 많이 당하고 나서야 저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참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래도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비교해도 사랑이 참 많았어요. 막내여서도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그게 제 안에 남아 있어요. 어머니가 늘 가족을 따뜻하게 챙기셨고, 언니들도 저를 많이 감싸줬어요.

두 번째 장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라도 광주 시내예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5.18 민주화운동을 현장에서 겪었어요. 그 현장이 눈에 보이고 들렸기 때문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우리가 6.25 전쟁을 책으로 습득했잖아요. 저는 그 당시 상황이 전쟁이라 생각했었어요. 제가 방송국이 불타는 걸 눈으로 직접 봤거든요. 지금의 광주는 매우 발전했고 넓어졌지만 당시에는 도시에 높은 건물은 별로 없었고 도시 자체가 작았어요. 대부분의 건물들이 낮다 보니 방송국 같은 곳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거죠.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방송국이 불타는 것을 보았을 거예요.

방송국이 불이 타면서 통신이 완전히 끊어지다보니 방송도 못 보고, 일단 소식이 완전히 끊겼던 거죠. 그때는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 소위 ‘복덕방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분들이 소식을 전해주던 기억이 나요. 그분들은 여러 동네를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몇 가구가 모여 있는 집에 방문해 소식을 전해주셨어요. 우리 집에도 놀러왔었죠. 하지만 그때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학교를 안 가게 되었으니까 처음엔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운동장이 집에서 가까워서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고 그랬죠. 그런데 어느 날은 갑자기 대피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학교에 대피소가 있었는데, 지하실 같은 곳이었어요. 그곳으로 내려가서 숨어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큰언니가 대학생이었는데, 언니가 저한테 “너는 걸어서 시골로 피신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밖에 나가 보니 차가 행렬처럼 지나가는데, 그 안에는 투쟁하는 학생들이 가득 타 있었어요.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고 사람들에게 먹을 걸 달라고 외쳤죠. 그런 광경을 보니 전쟁이 일어났다고 느낄 수밖에요. 너무 놀라운 일이었을 정도로 아직도 당시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어느 날은 밤에 갑자기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실제 폭격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또 어느 날은 ‘북한에서 사람이 내려왔다’라는 소문도 돌았어요. 잘못된 소문이 돌았던 거죠.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아이였던 저는 그저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어요.

도시가 불타고, 온통 황폐해졌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어요. 어느 날 어른들이 도청 쪽으로 간다기에 저도 따라간 적이 있었어요. 어린아이다보니 빨리 걸을 수도 없었고 해서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도청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실제로 시신들이 있었어요. 보면 안 되는 건 알았지만 도저히 눈을 돌릴 수가 없더군요.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그런 기억들이 지금도 제 안에 남아 있어요. 커 보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내보내고, 사실을 왜곡했던 부분이 저에게는 큰 분노로 다가오더라고요. 서울에 올라왔을 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시기의 일을 얘기하면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분노를 드러내면, 사람들은 제가 ‘지방색을 드러낸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정말 속상했어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이 여럿 나왔잖아요. 하지만 영화들이 사실을 다 보여주진 못해요. 제가 겪었던 현실의 10분의 1도 표현이 안 돼요. 그래서 한때는 ‘이건 알려야 한다, 진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얘기를 꺼내고 있으면 사람들은 제가 정치적인 색을 드러낸다고 평가하는 거예요. 나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도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심지어 남자친구랑도 싸운 적이 있어요. 그 사람도 나를 비난하더라고요. 그땐 정말 너무 속이 상하고, 견디기 힘들었어요.

세 번째 장

중학교 시절이 제일 재밌었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발달이 좀 늦은 편이었거든요. 월경도 늦게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그때는 그냥 마냥 즐거웠어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에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중학생이 되어서야 즐길 수 있었다 보니 더 즐겁기도 했어요. 1학년, 2학년, 3학년 내내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죠. 그때부터는 공부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친구에게 푹 빠져있었어요. 당시에는 친구가 너무 좋았던 거죠. 그 친구가 너무 좋다보니 나하고만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다른 애들이랑 놀면 괜히 서운하고 마음이 상했던거죠. 그게 사랑도 아니고, 단순한 우정도 아닌 묘한 감정이었어요. 연애 감정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조금 생각해볼게’라는 말 한마디에도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힘들어서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 재밌는 건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은 나만 그랬던 게 아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친구에 대한 깊은 감정이 사춘기와 함께 심각하게 찾아온거죠.

제가 다닌 학교들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학교라 건물이 오래되었어요. 학교 주변으로는 수풀이 우거져있었고, 수업 시간에는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계속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거죠. ‘학교에 있고 싶지 않아’와 같은 생각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소심했던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해요. 학교보다는 사회로 빨리 나가고 싶었고,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술 쪽이었나 싶지만 그렇다고 명확하지는 않았어요.

그 나이 땐 나 자신이 멋있어 보이고 싶잖아요. 글을 써볼까, 작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때는 왜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그저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 생각에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그냥 학교만 다니는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학교는 가기 싫어도 성실하게 다녀야겠다 하면서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착한 딸 콤플렉스’였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엔 공부를 잘하는 애보다 오히려 공부 안 하는 애들이 인기가 많았어요. 그들을 ‘날라리’라고 불렀죠. 근데 저는 날라리는 못 되었어요. 싸우는 것도 무서워, 아니면 눈에 띄어서 선생님께 잘하는 것도 못해,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조용히 다니는 아이였던거죠. 존재감도 없이 시간을 보낸거죠.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진 공부를 좀 했어요. 조금만 하면 성적이 꽤 나오기도 했었죠.

당시에는 학생 수가 많아 학급 수도 많았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키가 쑥 커버려서 어느 날은 농구부 애들이 저한테 들어오라며 번호를 주더라고요. 또 선생님이 키가 크니 뒤로 가라고 할 때도 있었고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저는 제가 키가 크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마치 내가 ‘키가 커지는 병’에 걸렸나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우리 가족이 전반적으로 키가 큰 편이긴 한데, 그렇게까지 크진 않아요. 외가 쪽 식구들이 좀 큰 편이었고요.

고등학교 때는 또 다이어트 생각이 많았어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인데, 살은 빼고 싶고, 살이 그렇게 찐 것도 아닌데, 괜히 볼살이라던지 내 스스로가 살이 쪘다고 본거죠. 중고등학생들의 특징이기도 하는가 봐요. 살을 그렇게도 빼고 싶었고, 계속 날씬해지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키가 갑자기 커지다 보니 어느날 무용 선생님 눈에 들었어요. 무용을 하라고 추천해주어서 배워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잘 따라하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계속 하라고 하셨는데, 제 머릿속엔 ‘무용은 돈이 많이 들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가난했던 환경에서 가졌던 열등감일지 콤플렉스인지 모르겠지만 왜 그런 생각을 먼저 했을까, 왜 나는 아이답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에 나 자신이 슬펐어요.

집에다 무용을 하겠다고 선뜻 말할 수 없겠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하면 엄마가 속상해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짠해요. 결국 선생님께 무용을 안 하겠다고 했어요. 1학년 때는 공부를 조금 했었어서 공부를 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네가 공부를 얼마나 잘한다고 그래? 성적표 가져와 봐”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들으니 반장이 선생님께 제 성적표를 가져다줬대요.

대학도 광주에서 다녔어요. 대부분 서울로 가잖아요. 그런데 어머니가 막내인 저만은 곁에 두고 싶다고 하셨어요. 우리 어머니 소원이 그런데…. 저는 또 ‘착한 딸’이니까 거절을 못 했죠. 착했던 게 아니라, 아마 착해야 한다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몇 번 있었어요. 대학에 다닐 때였는지 졸업하고 나서인지 잘 기억은 안 나요. 그런데 TV 광고에서 ‘나는 나야,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거야’와 같은 내용의 말이 나오더라고요. 문득 ‘내가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으면,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곽지수

기도하는 여인

2025

철사, 종이, 테이프, 해바라기씨, 스티커, 타이어, 케이블타이, 포장종이, 큐빅, 열쇠고리, 구리파이프, PVC호스, 게임카드, 대나무

70x90x170cm

곽지수

[작품 설명]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여인의 형상을 담은 <기도하는 여인>은 연약한 재료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조각상이자 자화상이다. 이 불안하고 힘없어 보이는 철사, 종이, 파이프 등은 간신히 그녀의 형태를 지탱한다. 그 위에는 사람의 손, 앵무새, 노란 꽃, 보석, 타이어 등의 요소들이 놓이고 교차하며, 사회에 길들여진 인간, 특히 여성성의 탄생을 은유한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눈과 새의 눈에서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눈물이 내린다. 슬픔이 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삶이 불안하고 슬플지라도 계속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그녀의 의지를 담고 있다

[작가 소개]

곽지수(1993-)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내부자와 외부자 간의 경계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소속감에 대하여 질문한다. 매우 작거나 버려진 물건을 활용해 개인의 서사를 시각 언어로 가시화하며,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정체성과 그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WWW SPACE 2(2024), 우석갤러리(2024)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실험적인 조형성으로 한국과 독일의 여러 아티스트 공간 및 갤러리 기획전에 다수 참여하였다

김금옥

여, 70대, 용인시 성복동 거주

1. 나의 유년시절

나는 늘 ‘왜’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했다. ) 이전 세대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을 열다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안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오늘날 예술 지원과 주제는 주로 젊은 창작자들과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장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빠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특정 세대만을 주목하는 것은 불균형적 시각을 반영한다. 본 기획은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경험을 조명한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을 만든다. 2) 스스로를 잃은 세대를 위한 일상의 큐레이션 개인의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기 MZ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독립을 중시한다. 반면 부모 세대는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 중요한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3) 세대 간 대화와 상호 성장을 위한 기회 젊은 예술가와 중장년층의 간극을 줄이고 상호 성장과 사회적 공감을 도모 세대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2. 나의 20대

청춘의 한가운데서 나는 세상을 이기고 싶었다. ) 이전 세대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을 열다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안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오늘날 예술 지원과 주제는 주로 젊은 창작자들과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장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빠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특정 세대만을 주목하는 것은 불균형적 시각을 반영한다. 본 기획은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경험을 조명한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을 만든다. 2) 스스로를 잃은 세대를 위한 일상의 큐레이션 개인의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기 MZ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독립을 중시한다. 반면 부모 세대는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 중요한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3) 세대 간 대화와 상호 성장을 위한 기회 젊은 예술가와 중장년층의 간극을 줄이고 상호 성장과 사회적 공감을 도모 세대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3. 결혼 그리고 여성

결혼은 내게 또 다른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전 세대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을 열다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안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오늘날 예술 지원과 주제는 주로 젊은 창작자들과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장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빠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특정 세대만을 주목하는 것은 불균형적 시각을 반영한다. 본 기획은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경험을 조명한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을 만든다. 2) 스스로를 잃은 세대를 위한 일상의 큐레이션 개인의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기 MZ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독립을 중시한다. 반면 부모 세대는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 중요한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3) 세대 간 대화와 상호 성장을 위한 기회 젊은 예술가와 중장년층의 간극을 줄이고 상호 성장과 사회적 공감을 도모 세대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

4. 주체적인 삶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시점은 ) 이전 세대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을 열다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안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오늘날 예술 지원과 주제는 주로 젊은 창작자들과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장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빠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특정 세대만을 주목하는 것은 불균형적 시각을 반영한다. 본 기획은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경험을 조명한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을 만든다. 2) 스스로를 잃은 세대를 위한 일상의 큐레이션 개인의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기 MZ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독립을 중시한다. 반면 부모 세대는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 중요한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3) 세대 간 대화와 상호 성장을 위한 기회 젊은 예술가와 중장년층의 간극을 줄이고 상호 성장과 사회적 공감을 도모 세대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5. 현재형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

안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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